본문 바로가기
삶의 여행기/국내여행

강원도 영월 여행기 2부 [단종대왕의 장릉]

by 하늘초롱 2020. 8. 1.
728x90


강원도 영월 여행기 2부 [단종대왕의 장릉]


지난번 '영월 여행기 1부'에 이어 오늘 포스팅하여 볼 곳은 단종대왕께서 안식에 드신 '장릉'입니다.

장릉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86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제6대 왕이신 단종대왕의 왕릉으로서 1970년 5월 26일에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제19대 왕이신 숙종 대왕 이전에는 '노산군의 묘'로 불렸다가 숙종으로 인하여 단종대왕으로 복위되었고 '능'지위로 격상되어 '장릉'으로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별칭으로는 '노릉'이라고도 합니다.

현재 조선왕릉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문화재이며,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글로벌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장릉의 입구를 들어서시면, 바로 오른쪽에 화장실 건물이 있고 그 옆에 등산로의 초입이 있습니다. 장릉은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강원도의 가파른 산세를 따라 조성되었기에 뒷동산에 오르는 것 같은 수고로움을 더하셔야 합니다. 

 

강원도의 맑은 공기와 숲이 주는 피톤치드를 흠뻑 받으시면서 오르다 보면 곧 단종대왕의 릉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오르다 보니 기암괴석도 눈에 띄며 봉분까지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잘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장릉이 강원도 오지인 영월에 조성되어 있고, 또 단종의 봉분이 비탈진 산의 정상 부위에 있기에 여타의 다른 왕릉에 비해서 과거에는 접근이 수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정자각'쪽에서 바라보니 정말 절벽에 가까운 곳에 단종대왕의 봉분이 위치하고 있더 군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13세에 국혼을 올리고 한 나라의 왕으로서 지아비로서 삶을 살았으나 숙부인 세조에 의해 왕위를 강탈당하고, 아내와는 원치 않는 이별을 하여 눈물과 한숨으로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한 단종. 

아버지인 문종의 고집으로 인해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준 것이 훗날에 결국 자식의 목숨을 앗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내용이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을 터이지만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종대왕께 참배하고 내려오는 중에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하였던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잡길래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길을 끈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정령송'이었습니다......

정령송은 돌아가실 때까지 늘 눈물지으며 그리워하셨던, 왕비이신 '정순왕후''사릉'에서 옮겨온 소나무입니다. 현재 정순왕후의 사릉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돌아가신 후에도 남편과 같이 있지 못하기에 사릉의 소나무를 남편이 있는 장릉으로 옮겨 심은 것이며 이를 '정령송'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한때 사릉의 정순왕후 봉분 뒤편에 심은 소나무들이 모두 남편이 있는 장릉을 향해 고개 숙여 자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 이런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더 울적하여지더군요


봉분에서 돌아 나오면 우측에 내려가는 옆길이 나오는데요 이를 따라 내려가면 제를 지내는 정자각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정자각은 다른 왕릉에 비해 봉분에서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곳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자각 앞에는 제사를 지낼 때 필요한 용수 공급을 위하여 영천(靈泉)이라는 우물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치 장독대와 같은 곳은 '배식단'으로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해 제를 올리는 곳입니다.

지금도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단종대왕은 조선의 왕들 중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다른 왕릉에 비해 협소하고 왕비와 같이 조성되지 못하였으며, 비탈진 험한 산세에 조성되어 접근이 용이치 않으며, 왕릉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장릉'의 특이한 점은  다른 왕릉에는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장릉의 입구에서 정자각을 향하는 정면의 진입공간 우측에 나열되어 있는 건축물들인데요, 이는 모두 단종을 위해 목숨을 버린 충신들을 위한 건축물들입니다. 복위되기 전, '노산군 묘'를 찾아 제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 재실 옆에 위치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 여기에 더해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종친, 환관, 궁녀, 노비 등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배식단'입니다.


조선의 왕들 중,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지며 왕과 함께 바람과 같이 꺼져 버린 사례는 단종대왕이 유일하며, 조선의 신분 구조상 제일 하층민인 노비들까지 함께 했다는 것은 단종의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였으며 또한 안타까움이 더해져 어린 단종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의 가슴에 함께 하였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잘 조성되어 있는 왕릉에 불과하지만, 역사가 전해주는 안타까움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단종대왕의 '장릉'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혹 휴가철에 아니면 출장 중에 지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 봉분까지 올라 참배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한다면 더 좋은 산 교육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장마가 좀 길어져 습도가 높고, 코로나19까지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몸 관리 더 잘하시고 휴가시즌에 즐거운 시간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