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이 길면 모두가 유식할까요?
많은 이들이 대화중에 무식과 유식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농담일 수도 진담일 수도 있지만, 무식(無識)과 유식(有識)의 범주에서 특히 무식에 대해 논 할 때는 다툼이 생길 여지가 많기에 조심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만큼 무식과 유식에 대해 관심이 상당히 높은 범주에 속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과 배움이 곧 성공이라는 인식이 유교가 도입된 조선의 건국 시점에서부터 유래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유식(有識) 즉, 배움이 스스로의 완성이며 성공을 견인한다는 것은 오랜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배움을 통하여 결론적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던가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판, 검사로 임용이 된다던가 한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에서는 '개천에서 용 났다!' 하며 떠들어 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배움 즉 유식은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지향점이며, 자녀들이 똑똑하여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배움을 통하여 성공이라 지칭되는 자리에 입성하기를 소원하는 부모의 원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으며, 가진 것이라도 많다면 모르지만, 가진 것도 없는 서민이라면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래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비롯된, 흔히들 이야기하는 판, 검사의 자리에 오른 것은 사실상 등용문이며, 개천에서 용 나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반도의 조선인이 성공이라는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판, 검사로 임용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여겨졌던 단 하나의 코스였으며, 이로 인하여 수많은 부모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판, 검사의 임용이 용이 되어 날개를 달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필자가 논하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먼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서두가 긴 이유는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다른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자라오신 세대이십니다. 험한 시대를 살다 보니 당연히 학교와는 거리가 멀었고 배움이란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칠순, 팔순의 나이에도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며, 뒤늦게나마 노인정에서 문화센터에서 주민센터를 통하여 아니면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한글을 깨치시거나 검정고시로 초중등 과정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상당수이십니다.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높으며 한이 맺혀 계신 것이시라 생각이 듭니다. 유식(有識)이란, 무식(無識)과 달리 수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마음의 한 구석에 남아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배웠다는 것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과연 유식하다 할 수 있을 까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국립대를 나와 판, 검사가 되었다 해서 과연 유식하다 할 수 있을 까요?
우리의 부모님들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글을 몰랐어도 상황에 맞게 처신하셨으며 공정하셨고, 공평하셨으며, 다툼보다는 화해하려 노력하였고 자녀를 바르게 키우려 하셨으며, 인성을 바로 심어주려 노력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음에도 가방끈이 짧았음에도 경험으로 사회성으로 해오셨던 것입니다. 이는 곧 많이 배운 것이 유식하지 않으며, 배우지 않았다 하여 무식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현대를 사는 많이 배운 이들이 무식한 짓을 하고 있으며, 흔히들 성공이란 잣대에 드는 잘잘못을 가리는 판, 검사의 위치에 있음에도 법전에 적힌 판결은 잘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사회적 인간적 통념에 따른 판단은 무식한 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이 책에 적힌 시험에 나오는 것들이나 이론에는 전문가의 수준으로 잘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제로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꽝이라는 것이죠.
이는 곧 많이 배워 본인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양은 많을지 모르나 무식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은 것과 유식은 별개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식이라 함은 동네 이장님처럼 통,반장님처럼 배움과 별개로 인간적이어야 하며 세상에 널리 통용되고 다수의 의견을 토대로 일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유식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께서는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유식하셨고, 현명하셨으며 똑똑하셨고 어진 부모님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유식하지 않은 무식한 이들이 판, 검사의 자리에서 국회의원의 자리에서 공직자의 자리에서 마치 저들이 유식하며 자신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야 바로 갈 수 있다는 착각과 '그래 그들이 많이 배웠으니 맞을 꺼야!'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변하지 않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貧益貧 富益富)'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유식한 이들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오늘의 유식한 이들은 저들이 아닌 바로 당신, 평범한 보통사람, 평범한 국민이라는 것을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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