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였던 누이가 있습니다.
필자에게는 엄마였던 소중한 누이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2남 3녀의 자녀를 두어 6~70년대에는 보편적인 가족 수의 일반적인 가정이었습니다. 당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은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님들을 호구지책을 위하여 거리로 내몰았고, 대부분의 우리네 이웃들은 서민의 삶을 살아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 역시 자식을 먹여 살리고 학교를 보내기 위하여 정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먹고살던 터라 어린시절 늘 배고팠던 시기였던 것이 기억에 선하게 남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 필자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으며, 아버지는 서울에서 화물용 자전거에 싸리나무 망태에 담긴 숯을 싣고 팔러 다니셨으며, 어머니는 지금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중부시장에서 나무궤짝에 담긴 생선을 팔아 가족들이 연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어머니는 쉬는 날도 없이 1년 365일을 늘 새벽에 일을 나가셨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시기에 저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때부터 어머니의 품보다는 세 살 위의 누이와 함께 지내며, 누이가 거의 저를 기저귀 갈고 업어 키우다시피 하였습니다.
자식을 위해 오랜 고생을 해오신 어머니께서 아시면 섭섭하실 수 있고 또 죄송한 일이지만은, 어릴 때에는 사실 잠에서 깨면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기에 사물을 판단하고 알 수 있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나이까지는 누이를 엄마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너무 약해 늘 앓았고, 아플 때면 제 곁에는 언제나 누이가 나를 간호하고 돌보았으며, 없던 형편이지만 누이가 돈을 모았는지 아픈 저를 데리고 서울 인현동에 위치한 삼풍상가의 식당에 데려가 오므라이스를 사주곤 했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어린 시절 몸이 유달리 약했던 막내아들이 당시에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우리 아버지께서는 출생신고를 1년을 미루어 뒤늦게 할 정도 셨습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출생 후,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합니다.
지금도 아플 때면 어릴 때 늘 끙끙 거리며 앓던 기억과 누이가 늘 곁에서 간호해주었던 일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우리 누이는 내게는 엄마였고 보호자였으며, 수호신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누이가 안 보이면 울었고 잠을 자도 누이의 품 안에서 잠이 들곤 했던 기억이 지난 57년의 삶 가운데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어려웠던 시절로부터 자식을 키우시기에 일생을 바쳐 생선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를 사랑하며 고생을 해오신 것을 떠올리면 늘 눈물이 먼저 앞서 달려 나오지만, 어머니 외에 내게는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형이나 큰누이와는 달리 둘째 누이는 형제 중에서도 내게는 정말 다른 존재이며, 제가 무엇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입니다. 두 번의 암수술을 하고 아직도 병원 치료를 다니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누이의 품에서 자란 내가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프고 먹먹할 따름입니다.
간혹 TV나 영화를 보면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다니는 누이를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이든, 혼란스러웠던 6.25 전쟁통이든 우리의 누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험난한 생활전선에 뛰어드신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때로는 아버지였으며 때로는 엄마로서 동생들을 키웠고 돌보아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기억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내게도 엄마였던 누이에게 어머니에게 하듯이 효도를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 그리고 성공한 중소기업의 사장이신 매형과 가정을 이루며 살고 계시는 나의 누이는 제가 누이에게 아들과 같다는 것을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쉽사리 지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25년간의 미국 이민 생활중에서도 몸이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면 늘 누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혹여 누이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여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지만요.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 꽃다웠고 어여쁜 엄마였던 나의 누이도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이십니다. 두 번의 수술에 많이 지쳐 보이시지만 반드시 암을 이겨내시고 건강을 되찾으시길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어 봅니다. 엄마였던 나의 누이에게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지만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이야기를 이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누이..... 내게는 엄마였던 누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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